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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조선왕릉'

<기획2>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조선왕릉'
두 번의 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오른 두 형제 정종과 태종
 박재석기자기사입력 : 2011-01-30

정안왕후와 나란히 잠들어 있는 정종의 능, 후릉(厚陵)

 

정종은 왕의 뜻은 예초부터 없었지만 동생 때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왕위에 올라 실직적인 왕권을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비운의 왕이다.

 

조선을 창건한 태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정종은 조선이 개국이 되면 영안군(永安君)으로 책봉된다. 그 후 제 1 차의 왕자의 난으로 골육상쟁을 겪으면서 세자로 책봉된 후 동생인 방원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왕위에 오른다.

 

왕위에 욕심이 많았던 넷째 방간에 의해 제 2 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방원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개성 인덕궁에 머물면서 격구나 사냥, 연희를 즐기면서 유유자적한 세월을 보내다가 세종 1년인 1419년에 63세 나이로 승하하게 된다.

 

<후릉(厚陵) 전경>

 

후릉(厚陵)은 정종과 정안왕후가 잠들어 있는 능이다. 정안왕후가 정종 보다 앞서 승하했기에 후릉이라는 능호를 받았다. 그 후 정종이 승하할 때 정안왕후의 능호를 이어받은 것이다. 조선 초기에 왕비가 먼저 죽고 능호를 받으면 왕이 나중에 죽어 능호를 이어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후릉은 조선의 왕릉 가운데 최초로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난간석으로 연결한 쌍릉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고려 공민왕릉의 형식을 따라 봉분에는 12면의 병풍석을 두르고 있으며, 석마를 동원한 문석인과 무석인을 각각 2쌍씩 배치하였다.

 

후릉은 경기도 개성시 판문군 령정리에 위치해 있다. 후릉 조성한 시기는 태종 12년인 1412년에 만들어졌다.

 

 

왕권 강화에 목숨을 걸었던 태종 이방원의 능, 헌릉.

 

그야말로 왕위를 위해 부모, 형제, 자식, 그리고 조강지차까지 적(敵)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태종 이방원.

 

태종은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에서 1367년(고려 공민왕 16) 5월 16일에 함흥에서 태어났다. 형들과 달리 학문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면서 문과에 급제하여 밀직사대언이 되었던 그는 조선의 왕 중에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큰 공을 세운 공로로 1392년에 정안군으로 봉해진다. 하지만 정도전의 계략으로 세자책봉에 탈락 되자 제 1 차의 왕자의 난을 일으켜서 세자 방석을 폐위 시키고 대신 형을 왕에 올린다.

 

그 후 넷째 형인 방간이 일으킨 제 2 차의 왕자의 난을 제압하고 1400년 11월에 조선 제 3 대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태종은 보위에 오르면서 많은 업적을 남긴다. 중앙 제도와 지방 제도를 제위 기간 동안 끝임 없이 하면서 왕권과 중앙집권을 강화시켰다. 또한 사병 폐지로 군사권을 장악하고, 전국의 인구를 파악하여 조세 징수와 군역 부과에 활용하는 호패법을 실시하는 등 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조선 왕조의 기반을 닦는데 많은 치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많은 업적 속에서도 왕권강화를 위해 목숨을 건 정치로 믿었던 부하들도 떠나보내고 아들인 양녕 조차도 부왕인 태종을 못 믿고 세자 자리를 스스로 물어나게 만들었다.

 

<헌릉의 전경>

 

헌릉은 3대 태종과 원비 원경왕후의 봉릉이 같은 언덕에 조영된 쌍릉 형식으로, 조선시대 쌍릉의 대표적인 능제이다.

 

원경왕후가 1420년(세종 2) 7월 10일 수강궁(창경궁) 별전에서 태종보다 일찍 세상을 뜨자, 태종의 명으로 같은 해 9월 17일 대모산 기슭에 건좌손향으로 왕후의 능을 조영했는데, 억불정책으로 원찰을 세우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422년(세종 4) 태종이 승하하자 아들 세종은 같은 해 9월 6일 어머니 원경왕후의 능 옆에 봉릉을 따로 만들어 아버지를 모시고 난간으로 연결하여 쌍릉을 조성하고 곡장을 둘렀다.

 

헌릉이 지닌 조선 초기 왕릉으로서의 특성을 두 가지 꼽자면 소전대와 상석 아래 놓인 고석의 개수를 들 수 있다. 정자각 북서측에 있는 소전대라고 하는 석물은 제례의 마지막 절차인 지방을 불사르는 시설로 태조 건원릉과 이곳 헌릉에서만 볼 수 있는 조선시대 초기의 석물이다.

 

헌릉은 현재 서울 서초구 헌인릉길 42에 위치하고 있는데, 사적 제 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조뉴스  박재석 기자>